1926년 창간, 이민자 삶 기록 투쟁•성취 등 격변 역사 증언 언어장벽 뚫어준 정보 생명줄 커뮤니티 초점 콘텐츠에 중점
1932년 대통령 선거 결과를 다룬 라 오피니온 1면.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허버트 후버를 꺾고 당선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마이 코드/LA타임스, 텍사스 대학교 샌안토니오 도서관 특별 컬렉션]
100년 전 라 오피니온을 창간한 이그나시오 E. 로사노 시니어. [마이 코드/LA타임스, 텍사스 대학교 샌안토니오 도서관 특별 컬렉션]
라티노들의 삶을 기록해 온 LA의 스페인어 신문 ‘라 오피니온(La Opinion)’이 지난 16일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
이그나시오 E. 로사노 시니어는 1926년 멕시코 독립기념일(9월 16일)에 라 오피니온을 창간했다. 당시 LA에서는 약 12개의 스페인어 신문이 발행되고 있었다. 대공황이 발생하기 3년 전이었으며, 이후 멕시코인과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강제 추방되는 일이 벌어지기 전이었다.
그 모든 역사의 격변 속에서도 라 오피니온은 오랜 세월을 견뎌냈다. 이 신문은 성장하는 LA 멕시코계 커뮤니티의 삶을 여러 세대에 걸쳐 기록했다.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의 이민이 급증하면서 LA 지역의 인구 및 정치 지형이 크게 변화했고, 라 오피니온 역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라 오피니온은 LA의 갈수록 다양해지는 라티노 커뮤니티를 취재해 온 100년의 이정표를 세웠다. 다른 신문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라 오피니온은 여전히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라 오피니온을 2022년부터 소유하고 있는 마이코드(My Code)의 최고운영책임자(COO) 데이브 리칼치는 신문 창간 100주년에 대해 “놀라운 업적”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뉴스 앱과 소셜미디어가 중심이 된 시대에는 라 오피니온과 같은 신문이 과거에 가졌던 영향력을 간과하기 쉽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많은 이민자에게 스페인어 신문은 당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일자리를 찾고 아파트를 임대하고 자동차를 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생명줄과 같은 역할을 했다.
라 오피니온은 이민 단속과 같은 격변의 시기와 라티노 사회에 영향을 미친 정치적 현안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불법 체류자들에게 많은 공공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주민발의안 187호(Proposition 187)였다.
전미 히스패닉 언론인협회 회장인 두니아 엘비르는 당시를 회상하며 “1980년대에 성장한 우리 중 많은 사람은 그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특히 라 오피니온을 비롯한 지역 신문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분명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문들이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돼줬다”고 말했다.
엘비르는 라 오피니온의 이러한 입장이 라티노 주민들에게 자신들이 이 도시의 구성원이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어로 “감히 말하자면 라 오피니온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영혼을 위한 약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100주년은 수십 년 동안 성장과 축소를 반복해 온 라 오피니온에 있어 한편으로는 씁쓸한 순간이기도 하다. 다른 신문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정리해고와 수익 감소, 독자 감소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라 오피니온은 정규직 직원과 프리랜서를 합쳐 약 50명이 일하고 있다. 과거 수백 명의 직원이 근무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규모다. 여전히 종이신문을 발행하고 있지만, 크기가 작고 보다 압축된 타블로이드 형식으로 발행된다.
리칼치는 역사적인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신문 웹사이트와 지면에 ‘우리가 LA다’란 제목의 칼럼(Somos L.A. Columna) 시리즈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각 칼럼은 100단어로 구성되며 소셜미디어 계정에도 공유될 예정이다.
리칼치는 이 짧은 칼럼들이 LA라는 도시를 만들어 온 선출직 공직자, 지역사회 지도자, 운동선수, 예술가, 사업가, 활동가들의 진솔한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칼럼 기고자 명단에는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전 LA 시장, 구스타보 두다멜 전 LA 필하모닉 음악·예술감독, 바이런 바스케스 과테말라 LA문화원장 등이 포함됐다.
각 칼럼에는 LA에서 라 오피니온이 걸어온 역사를 되돌아보는 짧은 영상도 함께 공개된다. 영상은 스페인어로 된 간단한 문장 “우리는 언제나 이곳에 있었다”로 시작한다.
100주년을 맞은 시점도 의미가 있다. 현재는 히스패닉 문화유산의 달(Hispanic Heritage Month) 기간이기 때문이다.
USC 언론학 명예교수인 펠릭스 구티에레스는 창간 당시를 “LA 스페인어 신문의 황금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 대부분의 신문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 운동과 연계돼 있었지만, 라 오피니온은 저널리즘을 고수하면서 차별화했다고 말했다.
구티에레스 교수는 “그들은 저널리즘과 보도에 전념했고, 기자와 필자들을 통해 멕시코계의 가장 좋은 모습을 보도하고 반영하려 했다. 그것이 처음의 비전이었고 라 오피니온은 그 비전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로사노 시니어가 1953년 사망한 뒤에는 그의 아들 이그나시오 E. 로사노 주니어가 신문 발행인이 됐다. 이후 가족의 경영은 3대에 걸쳐 이어졌다.
로사노 주니어가 이끌던 시기에 신문은 규모를 확대했고 해외 뉴스 중심에서 벗어나 라티노 주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지역 현안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당시 영어권 언론들이 무시하거나 잘못 해석했던 주제들이었다.
1980년대 들어 LA에는 또 한 차례 라틴아메리카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됐다. 빈곤과 전쟁을 피해 온 멕시코인과 중앙아메리카인들이었다. 이 시기 라 오피니온도 성장했고, 주민발의안 187호에 반대하고 시민권 취득과 이민자 권리를 장려하는 등 시민 저널리즘에 대한 역할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나 신문은 재정적인 어려움도 겪고 있었다. 1990년 당시 소유주였던 타임스 미러는 라 오피니온 지분 50%를 인수했다. 이 파트너십은 10여 년 뒤 종료됐다.
2004년 로사노 가족은 라 오피니온을 포함해 전국의 여러 스페인어 신문을 소유한 미디어 기업 ‘임프리미디어(ImpreMedia)’를 설립했다. 같은 해 모니카 로사노가 신문의 최고경영자(CEO) 겸 발행인으로 취임했다.
모니카 로사노는 신문이 언제나 라티노 사회와 권력 및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가교 구실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신문에는 두 가지 사명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하나는 우리 커뮤니티와 커뮤니티가 점점 커지고 있는 영향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가족을 부양하고, 국가에 기여하며, 사회의 근본적인 일부로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과 꿈을 가지고 온 이민자 커뮤니티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지켜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에는 멕시코인이 소유한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미국의 한 기관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2012년 로사노 가족은 아르헨티나 미디어 기업 ‘라 나시온’의 자회사에 회사 지분을 매각했다. 현재 비영리 뉴스기관 LA 로컬의 이사회 의장인 모니카 로사노는 라 오피니온이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단, 독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든 신문이 자신들이 취재하는 커뮤니티에 봉사하고 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뢰할 수 있고 커뮤니티에 초점을 맞춘 콘텐츠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리칼치도 이에 공감했다. 그는 “100년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 신문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계속 커뮤니티에 봉사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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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9월 16일자 ‘La Opinion, the chronicler of Latino life in L.A., reflects on a century of change’ 기사입니다.